야만의 시대를 활보한 '야메의사'의 허무개그

니는 백수가 되도 연극보러는 안 오나?

전화를 받자마자 배우질을 하는 친구놈의 타박이 시작됐다. 기자질에서 손 때고 백수가 된지 한 달째, 녀석이 이미 2편의 연극을 보러 오라 했지만 쌩깠던 터라 오래간만에 대학로로 향했다. 혜화 로터리를 지나 좁은 골목길에 들어가니 산돌극장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의 소속극단이 백수광부다. 이런 백수가 백수 광부의 공연을 보게 생겼다.


안 그래도 소주한잔 생각이 간절한데 오뎅국물로만 소주 한병은 거뜬히 비울 수 있을 듯한  비내리는 청계천의 허름한 포장마차를 배경으로 막이 오른다.

인생의 낙은 술이요, 다른 사람들 일에 훈수 뜨기 좋아하며 만취한 채 앉아 졸고 있는 주인공의 꼬락서니는 전혀 의사스럽지 않다. 이렇게 의사답지 않은 의사에게 환자가 찾는 삐삐(호출기)가 울리며 가짜 의사의 환자 찾아 삼만리 연극 <야메의사>는 시작된다.


장풍~~!  조중동파! VS 진중권파!

그의 여행은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MB와 함께한 2년반의 시간을 타임머신을 타고 가야하기 때문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이 넘쳐나는 광장에서 신명나는 춤판을 벌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세력과 조중동과의 한판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리고 무모한 권력과 우리의 무관심에 두벌주검이 된 5명의 혼을 만나 사경을 헤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서 행동하지 않은 양심, 침묵하는 양심에 대한 고뇌도 한다. 어렵고 골치 아프기만 할 것 같은 이 여행을 야메의사는 내내 웃게 만든다.

그가 화장실을 가기 위해 조중동과의 한판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 조중동이 장풍을 쏘며 미디어법파를 외치자 야메의사가 진중권파로 맞서는데 혼자서 한참을 웃었다. 촛불집회 당시 화장실을 개방하지 않던 조선 동아의 사옥과 특유의 비꼼과 깐죽거림으로 광화문의 해결사가 되었던 진중권 교수가 어찌나 자연스럽게 오버랩이 되던지.



이런 재미들에 한참 빠져 연극을 본 후 놀란 것은 위트 넘치는 풍자코드를 작가나 연출이 아닌 배우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대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극 올리기 3일 전까지 대사가 완성되지 않아 공연가부 결정을 못 했다는 후문이다. 어쨌든 아 머리 아파…’ 할 때마다 빵빵 터뜨려주는 코믹코드와 서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웃긴 주인공 캐릭터의 조화는 골치아팠던 2년반의 MB정부 스토리를 맛깔나게 풍자했다.

포장마차에 앉아 기자수첩을 정리한 100분

행운일까? 불운일까? 기자질을 하면서 이 극에서 나오는 모든 현장에 발을 한 번씩은 담궜었다. 청계천 복원, 한반도 대운하,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조중동 광고불매 운동, 오체투지 순례단, 용산참사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까지카프카의 소설 ‘시골의사’가 원작인 연극 ‘야메의사’는 이 현장들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기 보다는 환상 속에 있는 듯 느낌으로 표현한다. 하지만 그 몽환적인 무대는 내게 그 현장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만들었다.


청계천에서 빨래를 하던 한 아낙네가 한반도 대운하를 빗대어 할머니 기저기를 천으로 바꿨어요. 큰 강을 파야만 해서 생활보조금이 적게 나온데요라는 대사를 듣고는 MB가 대선 후보시절 검지를 들어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리며 운하를 만들고 그 곳에 배가 다니면 프로펠러가 돌면서 산소를 공급해서 물이 맑아진다는 황당한 발언을 했던 기억에 혼자 끽끽댔다.

그리고 시청광장에서 광화문 사거리까지 촘촘히 수놓았던 촛불의 바다,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기어야만 했던 침묵의 오체투지 순례행렬, 1월 20일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을 폭발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로 삼켜버린 용산의 남일당 빌딩 그리고 한 동안 불 속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악몽을 안겨줬던 참사의 트라우마, 5시간을 기다리고 30초간 통곡할 기회가 주어져도 그를 만나러 왔던 봉하마을의 조문행렬까지

이렇게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며 취재수첩을 정리하는 기분에 취해있을 때쯤 말할 것인가? 침묵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 마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던 행동하지 않은 양심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듯 하다. 야메의사는 환자를 만나도 그를 치료할 수 없다. 의사 행세를 하고 돌아다니지만 그가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가짜로 가득찬 야메의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만이 가짜가 아니다. 어차피 진정성이 결여된 채 껍데기에만 집중하는 세상 자체가 야메다.  하지 않겠다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정비 사업으로 둔갑했고 용산참사 유가족은 검찰의 수사자료 공개 거부로 재판정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개인 의견을 미니홈피에 올린 연예인의 입에 제갈을 물리고 광장은 굳게 닫혔다. 정권에 진중히 따르고 복종하지 않은 한 교수는 5개 대학의 강단에서 이유없이 퇴출하며 자유의 성역이었던 대학도 닫혔다.  그래서 일까? 극중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유서와는 달리 “부디 슬퍼해라. 부디 미안해해라. 부디 원망해라.”고 외친다.

 

MB정부 2년 6개월, 풍자의 타임머신 여행을 마친 뒤 쓴 소주 한잔 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강추하는 연극이다. 단 관객, 특히 백수광부 관계자들은 밤길 조심하기 바란다. 이 연극 때문에 기무사에서 어디서 술 먹는지, 어떤 대리 운전 이용하는지 사찰하고 간첩 사건으로 엮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

아메의 시대가 아니라 야만이 판치는 야만의 시대라 두려운 나날이다.



극단 백수광부 홈페이지 baeksukwangbu.cyworld.com

by 프로슈머 | 2009/09/02 15:43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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